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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라가야 왕성 1500년 잠 깼다, 경남 함안에서 발견
관리자기자
등록: 2018-06-08 00:45

▶아라가야 왕성 유적 발굴지 (문화재청)

 

[7LifeNews] 아라가야 왕성 실체가 경남 함안에서 처음 확인됐다.   

경상남도는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(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)에 대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긴급발굴조사에서 1,500년 전 아라가야 왕성 흔적을 발견했다고 7일 밝혔다. 

이번 조사는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에 대한 최초의 발굴조사로, 토성(土城)과 목책(木柵), 대형건물 터 등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를 밝히는 성과를 올렸다.  

이 일대는 조선시대 함주지(咸州誌, 1587년 편찬) 등 고문헌에 ‘가야국의 옛 도읍 터(伽倻國舊基)’로 기록되어 있는 데다 남문외(南門外), 대문천(大門川) 등 왕성,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 왕궁지로 전해져 왔다.  

토성은 전체 높이 8.5m, 상부 너비 20m~40m 규모로 동시기 가야 권역에서는 유례없는 대규모 성곽이다.  토성 상부에서는 2열의 나무 기둥으로 이루어진 목책이, 내부에서는 건물 터와 구덩이(수혈, 竪穴) 등이 발견됐다.  

출토된 토기 조각들로 보아 토성의 축조 및 사용 시기는 5세기 중반~6세기 중반으로, 이 시기는 아라가야 세력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전성기였다.  

이번에 확인된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권력의 존재와, 아라가야가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했던 정치·경제적 배경을 말해준다.  

또한, ‘일본서기’ 흠명기 544년과 552년 기록에 등장하는 ‘안라왕(安羅王, 아라가야(安羅)의 임금을 뜻함)’의 실제 거주 공간도 추정할 수 있게 됐다.   

아라가야는 가야 전·후기를 거쳐 금관가야,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을 이뤘고, 6세기에는 신라, 백제, 왜와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등 우리 고대사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었다.  

이번 발굴조사는 지난 4월 11일 왕궁지 유적 일원에서 경지 정리 중 드러난 성토(盛土, 흙을 쌓음) 흔적을 함안군청 관계자가 발견하면서 시작됐다. (세븐라이프뉴스 박희석 기자 7lifenews@naver.com)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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